두 종목을 같은 날 샀다. 하나는 하루에 1%도 잘 안 움직이는 대형주, 하나는 하루 5%가 예사인 코스닥 성장주다. 둘 다 “-10%면 손절"이라는 같은 규칙을 걸었다. 한 달 뒤 성장주는 별일 없이 출렁이다 -10%를 건드려 잘렸고, 그 뒤 반등해 원래 스토리대로 갔다. 대형주는 실적 전망이 꺾이며 천천히 미끄러졌는데, -10%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들고 있었다. 같은 숫자가 한쪽에서는 너무 타이트했고 다른 쪽에서는 너무 느슨했다. -10%라는 기준 자체에는 아무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10%가 종목마다 다른 사건인 이유
하루 1% 움직이는 종목에게 -10%는 열흘 치 하락이 쌓여야 나오는 큰 사건이다. 하루 5% 움직이는 종목에게 -10%는 이틀이면 나오는 일상이다. 손절선은 “여기까지 오면 내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한다"는 선인데, 변동성이 큰 종목에서는 판단이 틀리지 않아도 일상적인 출렁임만으로 그 선에 닿는다. 반대로 변동성이 작은 종목에서는 선에 닿았을 때 이미 추세가 한참 상한 뒤다.
그래서 손절선은 계좌의 사정(얼마 잃으면 아픈가)이 아니라 종목의 사정(얼마나 출렁이는 게 정상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든 종목에 같은 %를 긋는 것은, 키가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길이의 바지를 입히는 것과 같다.
변동성으로 재는 법 — ATR이라는 자
종목이 평소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재는 자로 흔히 ATR(Average True Range)을 쓴다. 최근 일정 기간(보통 14일) 동안 하루에 실제로 오간 폭 — 고가와 저가의 차이에, 전일 종가 대비 갭까지 포함한 값 — 의 평균이다. 차트 앱 대부분에 기본 지표로 들어 있다.
ATR이 잰 것은 그 종목의 ‘정상 소음’이다. 손절선을 이 소음의 2~3배 밖에 두면, 일상적인 출렁임에는 안 잘리고 정상 범위를 벗어난 하락에만 잘린다. 예컨대 5만원짜리 종목의 ATR이 1,500원(3%)이라면, 2배인 3,000원(6%) 아래는 소음 구간이고 손절선은 그 밖 — 진입가에서 6~9% 아래 어딘가에 놓인다. 같은 계산을 ATR 5%짜리 종목에 하면 손절선은 10~15% 밖으로 나간다. 손절 폭이 종목마다 달라지는 게 정상이라는 뜻이다.
가격이 아니라 이유가 죽었을 때
가격 기준과 별개로 한 축이 더 필요하다. 그 종목을 산 이유가 아직 살아 있는가다. 신제품 기대로 샀는데 출시가 무기한 연기됐다면, 수주 모멘텀으로 샀는데 계약이 취소됐다면, 가격이 손절선 위에 있어도 포지션의 근거는 이미 죽었다. 반대로 시장 전체가 무너지며 동반 하락한 것이라면 가격은 손절선을 건드렸어도 종목의 논리는 멀쩡할 수 있다 — 이 경우에도 일단 규칙대로 자르고 다시 사는 쪽이 규칙을 무시하는 것보다 낫다. 규칙에 예외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예외가 규칙이 된다.
여기에 시간을 세 번째 트리거로 두는 방법도 있다. 특정 이벤트(실적 발표, 수주 공시)를 보고 들어간 자리라면, 그 이벤트가 예정된 기한을 지나도록 오지 않았을 때 가격과 무관하게 나오는 것이다. 가격은 멀쩡한데 근거의 유통기한이 끝난 포지션은, 이유 없이 들고 있는 포지션과 같다.
정리하면 손절은 두세 개의 트리거를 가진 장치다. 가격이 정상 소음 범위를 벗어나거나(변동성 기준), 산 이유가 사라지거나(논리 기준), 근거의 시한이 지나거나(시간 기준). 어느 쪽이든 먼저 걸리면 실행한다.
손절 폭과 포지션 크기는 한 몸이다
“손절 폭이 15%나 되면 너무 크지 않나"라는 질문은 절반만 맞다. 손절 폭 자체가 아니라, 그 손절이 계좌에 입히는 손실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손실은 포지션 크기로 조절한다.
흔히 쓰는 방식이 한 번의 손절로 계좌의 1%(공격적이어도 2%)까지만 잃도록 포지션을 재단하는 것이다. 계좌 5,000만원, 허용 손실 1%(50만원)로 놓고 서두의 두 종목을 끝까지 계산해 보자.
| 대형주 A | 코스닥 성장주 B | |
|---|---|---|
| 주가 | 50,000원 | 20,000원 |
| ATR(14일) | 750원 (1.5%) | 1,000원 (5.0%) |
| 손절 폭 (ATR×2.5) | 1,875원 → 3.75% | 2,500원 → 12.5% |
| 손절선 | 48,125원 | 17,500원 |
| 포지션 (50만원 ÷ 손절폭) | 약 1,330만원 (266주) | 400만원 (200주) |
| 손절 시 계좌 손실 | 약 50만원 (1%) | 50만원 (1%) |
손절 폭은 3.75%와 12.5%로 세 배 넘게 다르지만, 잘렸을 때 계좌가 잃는 돈은 둘 다 정확히 50만원이다. 변동성이 큰 종목일수록 자동으로 적게 사게 되는 구조다. A의 포지션이 계좌의 27%까지 커진 게 마음에 걸린다면 종목당 상한(예: 계좌의 20%)을 별도 규칙으로 겹쳐 두면 된다 — 그 경우에도 순서는 같다. 손절선을 먼저 긋고 포지션 크기가 거기서 역산된다. 대부분은 반대로 한다 — 사고 싶은 만큼 사고, 그다음에 손절선을 고민한다. 그 순서가 “-10%쯤이면 되겠지"라는 근거 없는 숫자를 만든다.
손절은 공짜가 아니다
손절 규칙이 늘 성과를 지켜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주제의 대표적인 연구인 카민스키·로(Kaminski & Lo)의 “When Do Stop-Loss Rules Stop Losses?”는 조건을 명확히 갈라 보여줬다. 가격이 순수한 랜덤워크라면 손절 규칙은 기대수익을 깎기만 하고, 하락이 하락으로 이어지는 추세(모멘텀) 성질이 있을 때에만 손실을 실제로 줄여 준다. 하락하면 반등하는 평균회귀 성질이 강한 구간에서는 손절이 오히려 반등 직전에 파는 장치가 된다.
이게 손절 무용론은 아니다. 개별 종목의 급락은 이어지는 급락과 거래정지·상장폐지까지 꼬리가 길고, 계좌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그 꼬리다. 손절은 수익률을 높이는 장치가 아니라 그 꼬리를 잘라 게임에서 퇴장당하지 않게 하는 보험이고, 보험답게 평시에는 보험료(반등 직전에 잘리는 비용)를 문다. 이 비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손절 규칙이 아니라 포지션 크기 자체를 줄이는 게 맞다.
왜 미리, 왜 주문으로
손절 기준을 보유 중에 정하려 하면 심리가 개입한다. 이익 난 종목은 2.18배 더 잘 팔린다는 처분효과 글에서 봤듯, 손실 포지션 앞에서 사람의 기본값은 ‘확정을 미루는 것’이다. 손실이 난 뒤의 나는 손절선을 아래로 옮길 이유를 백 개쯤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손절선은 포지션이 없을 때, 즉 사기 전에 정해야 하고, 가능하면 스탑 주문(증권사 앱의 자동감시·예약 주문)으로 걸어 실행을 미래의 나에게 맡기지 않아야 한다.
정한 뒤의 규칙은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손절선은 위로만 옮긴다. 주가가 올라 평가익이 쌓이면 손절선을 따라 올려 이익을 잠글 수 있지만(트레일링), 주가가 내렸다고 손절선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손절선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다. 아래로 옮긴 손절선은 다음 하락에서 또 아래로 옮겨진다 — 한 번 옮겨 본 사람은 안다.
여기서 갈라서야 할 습관이 물타기다. 손실이 난 종목을 더 사서 평균단가를 낮추면 손절선이 필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손절했어야 할 포지션이 더 커진다. 분할매수 글에서 정리했듯 미리 계획된 분할 진입과 손실 후의 즉흥적인 물타기는 이름만 비슷한 다른 행동이고, 그 경계선이 바로 사전에 정한 손절선이다. 손절선 아래로 내려간 종목을 추가로 사는 순간, 계획은 끝났고 희망이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손절이 자꾸 잘려서 계좌가 마모된다면, 그건 대개 손절선이 아니라 진입이 문제다. 소음 범위 안에 손절선을 그었거나(자리를 잘못 쟀거나), 애초에 우위가 없는 자리에서 너무 자주 진입했거나. 손절은 틀린 판단의 비용을 작게 만드는 장치지, 틀린 판단을 줄여 주는 장치가 아니다.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이나 투자 방식을 권유하지 않습니다.